최근에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을 시작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하늘이 파랬고 햇살은 따사로웠기 때문이다. 가벼운 옷차림과 텀블러와 수건을 넣은 슬링백으로 등산 준비를 마쳤다.
어렸을 적, 아버지랑 자주 등산을 가곤 했는데 그땐 등산이 너무 재미없었다. 힘들게 올라가 정상에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바라보면 동네가 엄청 조그마하게 보이며 그 안에 아파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게 신기했다. 그렇지만 그건 아주 일시적이었고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차는 것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점차 아버지와 등산을 가길 꺼려했다.
그랬던 내가 갑작스레 등산을 하러 나갔다는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했다. 운동하는 겸 좋은 공기 마시는 겸 옛 추억 떠올리는 겸 나간 것도 없지 않아 있다.
등산로에 도착하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오랜만에 등산하는 거라 얼마 못 가 숨이 차는 게 느껴졌지만 그 보다 눈앞에 펼쳐지는 경치들이 너무 아름다워 힘든 것을 잊게 만들어 줬다. 햇빛에 비친 나무의 이파리가 빛났고 햇빛을 오랫동안 받은 흙과 나무에서 오는 향이 잡생각을 잊게 만들어줬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금방 전망대에 도착했다. 어린 시절 나와 비교해 보면 체격과 보폭 차이가 커서 그때보단 덜 힘들었던 것 같았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정상 코스에는 큰 바위가 많아 다칠 위험이 있어 조심히 올라가야 했다. 점차 고도가 높아지면서 그늘은 줄어들고 햇볕이 바로 들어와 바위가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와 오르는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점차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지만 정상이 코 앞이라 쉬지 않고 올라갔다. 정상의 시원한 공기를 맡고 싶다는 집념 하나로 이룬 것 같았다.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고 태극기 옆에 자리를 잡아 숨을 돌렸다. 너무 힘들어서 바깥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좀 진정하고서 바깥 경치를 봤는데 별 감흥이 없었다. 살짝 허무함도 느꼈던 것 같았다.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등산의 주 목적은 정상을 향하는 거라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해보니까 정상에 있을 때보다 정상을 바라보며 올라가는 과정이 더 좋았다. 목적을 이룸과 동시에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허무하게 만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등산이 싫어지진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았다. 여태껏 결과만을 바라보면 행동한 게 다 부질없고 중요한 건 과정 속에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내가 등산을 싫어했던 이유도 알아냈다. 그건 내가 땅만 보고 올라갔기 때문이다. 재미도 없고 하기 싫지만 결과가 나를 보상해 줄 거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꾸준히 등산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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